글래스 기판이 필요한 이유, 기판 휨 문제와 TGV 공정
AI 반도체가 커지면서 그 아래를 받치는 패키지 기판이 열을 받아 휘는 문제가 커졌습니다. 글래스 기판은 이 기판의 중간 소재를 플라스틱 계열에서 유리로 바꾸려는 기술입니다. 이 글은 칩이 왜 커지는지, 커지면 왜 휘는지, 왜 하필 유리인지, 글래스 기판을 어떤 공정으로 만드는지 차례로 설명합니다.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기술 배경을 설명하는 글이며 특정 기업의 매수·매도를 권하지 않습니다.
AI 반도체는 왜 자꾸 커지나
GPU와 HBM이 함께 늘어난다
엔비디아 데이터센터용 GPU는 약 2년마다 새 플랫폼이 나오고, 과학자 이름을 붙입니다. 암페어, 호퍼, 블랙웰 순서로 나왔고 그 뒤로 루빈, 파인만이 예고돼 있습니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크기 변화입니다.
- 다이 사이즈(반도체 칩 한 개의 크기)가 세대마다 커졌습니다. 블랙웰에서는 GPU 칩 면적이 이전 세대의 약 두 배가 됐습니다.
- 호퍼까지는 GPU 칩이 하나였고, 블랙웰부터는 큰 칩 두 개를 하나로 붙였습니다.
- 칩 옆에 붙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개수도 네 개에서 여섯 개, 여덟 개로 늘었습니다.
칩이 커지고 HBM이 늘면 이것들을 한데 묶은 패키지 전체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AI 성능을 좌우하는 세 가지
왜 이렇게까지 키울까요. 2020년 오픈AI가 발표한 스케일링 법칙 논문("Scaling Laws for Neural Language Models")은 언어 모델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 컴퓨팅 성능: 학습에 쓰는 연산량이 클수록 좋습니다.
- 데이터 양: 많이 넣을수록 성능이 좋아집니다.
- 파라미터(매개변수) 개수: 모델이 클수록 성능이 좋아집니다.
데이터를 많이 넣고 연산 속도를 높이려면 GPU가 커져야 하고, 옆에서 데이터를 공급하는 HBM도 많아져야 합니다.
모바일 AP와는 설계 방향이 반대다
스마트폰용 AP(삼성 엑시노스, 퀄컴 스냅드래곤 등)는 작을수록 좋습니다. 스마트폰은 배터리에 가장 큰 공간을 내주고 남은 자리에 반도체를 넣기 때문입니다. D램을 옆에 둘 자리도 아까워 AP 위에 겹쳐 올리는데, 이를 패키지 온 패키지(PoP)라고 부릅니다.
AI용 GPU는 다릅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지 않으니 공간 여유가 있고, 배터리가 아니라 전원을 꽂아 씁니다. 칩을 두세 배 크게 만들어도 성능이 대여섯 배 이상 좋아진다면 크게 만드는 편이 낫습니다.
크기 변화는 숫자로도 보입니다. TSMC가 테크 심포지엄에서 밝힌 로드맵을 보면 80mm × 80mm 정도였던 GPU 패키지 기판이 100mm × 100mm로, 다시 120mm × 150mm까지 커졌고, 다음 세대에는 더 커질 예정입니다.
패키지 기판이 커지면 생기는 휨 문제
GPU 아래에 있는 두 층
GPU와 HBM 아래에는 두 층이 더 있습니다.
- 실리콘 인터포저: GPU와 HBM을 촘촘한 배선으로 이어 주는 얇은 실리콘 층
- 패키지 서브스트레이트: 흔히 패키지 기판이라고 부르는 층. 인터포저와 메인보드를 이어 줍니다
GPU가 커지고 HBM이 늘면 이 두 층의 면적도 같이 커져야 합니다.
패키지 기판의 속 구조
패키지 기판을 잘라 보면 가운데 코어와 그 위아래의 회로 빌드업층으로 나뉩니다.
- 코어: 지금은 유리 섬유에 플라스틱 레진을 스며들게 해 굳힌 유기 소재(흔히 FR4 계열로 부릅니다)로 만듭니다. 유리 섬유가 들어 있지만 성질은 플라스틱에 가깝습니다.
- 회로 빌드업층: 코어 위아래에 쌓는 층으로, 구리 배선과 ABF(아지노모토 빌드업 필름, 층 사이를 절연하는 얇은 수지 필름)로 이뤄져 있습니다.
열이 내려오면 층마다 다르게 늘어난다
AI 반도체는 동작하면서 열을 많이 냅니다. GPU에서 난 열은 아래로 전달돼 코어까지 내려갑니다. 플라스틱은 열팽창 계수(온도가 오를 때 늘어나는 정도, CTE)가 상대적으로 커서 많이 늘어납니다. 위아래의 구리와 ABF 필름도 열을 받으면 늘어나려 합니다.
문제는 재료마다 늘어나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지구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핵, 맨틀, 지각이 똑같이 팽창하면 모양이 유지되지만, 팽창하는 정도가 다르면 중간 어딘가가 깨집니다. 기판에서는 이것이 마른오징어가 불에 휘듯 기판이 휘는 문제(워피지)로 나타납니다.
작을 땐 괜찮았는데
기판이 작을 때는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곡률로 휘어도 작은 기판은 끝이 들뜨는 높이가 작습니다. 기판이 커지면 같은 곡률이라도 끝부분이 훨씬 많이 들뜹니다. 위에 붙은 GPU와 HBM은 그대로인데 기판만 아래로 휘면, 가장자리의 연결부가 떨어져 접촉 불량이 생깁니다. 기판이 커질수록 휨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왜 유리인가, 열팽창 계수와 단일 소재
유리가 주목받는 첫 번째 이유는 열팽창 계수가 작다는 점입니다. 기존 코어에도 유리 섬유가 들어 있어 팽창을 어느 정도 억제하지만, 유리 그 자체와는 다릅니다. 반도체 기판용 유리는 열팽창 계수를 약 3.3ppm/℃ 수준으로 맞출 수 있어 실리콘 칩(약 2.6ppm/℃)과 차이가 작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단일 소재라는 점입니다. 기존 코어는 유리 섬유와 레진이라는 성질이 다른 두 재료가 섞인 복합 소재라, 열을 받을 때 생기는 힘을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열팽창 계수가 높은 것이 문제일까요, 재료끼리 계수가 안 맞는 것이 문제일까요. 답은 둘 다입니다.
- 열팽창 계수는 낮을수록 좋다.
- 복합 소재가 아닌 편이 좋고, 소재 가짓수를 줄일수록 좋다.
그래서 유리 섬유에 레진을 스며들게 한 것보다 유리판 자체가 힘을 제어하기에 유리합니다. 코어 소재를 유리 원장(가공 전 큰 유리판) 자체로 바꿔 플라스틱 서브스트레이트를 대체하려는 흐름이 글래스 기판의 첫 번째 방향입니다. 이렇게 만든 것을 글래스 코어 기판이라고 부릅니다.
글래스 인터포저, 실리콘 인터포저도 유리로
두 번째 방향은 위쪽의 실리콘 인터포저를 유리로 바꾸는 것입니다.
둥근 웨이퍼에서 네모를 자르면
실리콘 인터포저는 지름 300mm 원형 웨이퍼 위에서 만듭니다. 둥근 웨이퍼에서 네모난 인터포저를 잘라 내면 가장자리를 많이 버려야 해 효율이 떨어집니다. 인터포저를 크게 만들수록 버리는 부분은 더 늘어납니다. GPU와 HBM 면적이 커지면 인터포저도 커져야 하니, 실리콘 웨이퍼로 만드는 방식은 점점 비효율적이 됩니다.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유리 패널에서 만들면 가장자리만 조금 버리면 됩니다.
90mm 각 인터포저로 비교하면
- 300mm 실리콘 웨이퍼: 90mm × 90mm 인터포저가 5개 나옵니다.
- 515mm × 510mm 유리 원장: 같은 크기가 25개까지 나옵니다.
두 방향을 묶으면
AI 가속기 면적은 넓어지고 HBM은 늘어 패키지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받칠 인터포저와 서브스트레이트도 커져야 하는데, 유기 코어 기반 기존 패키지 기판과 실리콘 웨이퍼 기반 기존 인터포저 모두 한계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둘 다 유리로 만들자는 것이 글래스 기판 흐름의 핵심입니다.
글래스 기판 공정 3단계
글래스 기판 제조는 세부 공정이 매우 많지만, 큰 흐름은 세 부분입니다.
- TGV: 유리 원장에 구멍을 뚫고 그 안을 구리로 채우는 과정
- 회로 빌드업: 유리 원장 위아래로 회로를 쌓는 과정. 반도체에서 나온 신호를 아래로 내보내는 사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 싱귤레이션: 큰 원장에서 만든 기판을 낱개로 잘라 내는 완성 단계
1. TGV 공정(유리 관통 전극)
TGV(Through Glass Via)는 유리를 관통하는 전기 통로를 만드는 공정입니다.
- 유리 원장이 들어옵니다. 코닝, 쇼트 같은 글로벌 유리 회사들이 주로 공급합니다.
- 유리 표면에 레이저를 약하게 쏩니다. 레이저로 한 번에 뚫으면 빠르지만 유리가 깨지기 쉽고, 변형이 생기거나 구멍 표면이 거칠어지는 부작용이 많습니다. 약하게 쏜 레이저는 유리를 뚫지는 않지만 그 부분의 구조를 바꿔 놓습니다.
- 불산이나 강알칼리 용액 같은 식각액에 담급니다. 레이저로 구조가 바뀐 부분이 훨씬 빨리 녹아 구멍이 뚫립니다. 원하는 곳만 골라 녹는 정도를 식각 선택비라고 하고, 레이저는 이 선택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 메탈라이제이션(금속화) 공정으로 유리 표면과 구멍 안에 얇은 금속막을 입힙니다. 도금은 전기가 통하는 표면에 구리가 쌓이는 원리라, 먼저 유리가 전기를 통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전기 동도금으로 구멍을 구리로 채웁니다. 얇은 금속막만으로는 두꺼운 구리를 채울 수 없어서입니다.
- 표면 위로 넘친 구리를 CMP(화학적 기계 연마)로 갈아 평평하게 만듭니다.
여기까지가 TGV 공정입니다. 이 단계는 대형 기판 업체들이 외부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많이 도전하는 분야로 거론됩니다.
2. 회로 빌드업 공정
TGV가 끝난 유리 원장 앞뒤로 회로를 쌓습니다. 위쪽에는 반도체가 붙으니, 반도체에서 아래 메인보드까지 신호가 이어지도록 층층이 길을 놓는 일입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합니다.
- ABF 필름을 붙입니다.
- 그 위에 구리 배선을 만듭니다.
- 다시 ABF를 붙이고 구리 배선을 만드는 일을 반복합니다.
보통 위에 10개 층, 아래에 10개 층 정도가 붙습니다.
3. 싱귤레이션(낱개 절단)
글래스 기판 원장은 보통 515mm × 510mm 정도로 큽니다. 이 원장을 낱개 기판으로 잘라 내는 과정이 싱귤레이션입니다.
자르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이 단계에서 불량이 많이 납니다. 유리 원장 위아래에 ABF가 열 장씩 붙으면서 응력(재료 안에 쌓인 힘)이 쌓이는데, 자르는 순간 그 힘이 한꺼번에 풀리며 유리에 금이 가거나 깨질 수 있습니다. 이 단계까지 통과해야 글래스 코어 기판이나 글래스 인터포저가 완성됩니다.
글래스 기판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들
기존 기판 공정에 익숙한 사람들이 흔히 묻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프리프레그(유리 섬유에 수지를 반쯤 굳힌 접착 시트) 없이 유리 위에 구리를 어떻게 입히는지, 층을 쌓을 때 열과 압력을 가하는 핫프레스 공정에서 유리가 깨지지 않는지, 기존 PCB 공정과 완전히 다른 방식인지입니다.
앞의 공정 설명에 첫 번째 답이 있습니다. 유리 위 구리는 메탈라이제이션으로 얇은 금속막을 먼저 입히고 그 위에 도금해 만듭니다. 깨짐은 실제로 가장 큰 난제여서, TGV 단계의 레이저 조건부터 싱귤레이션까지 유리에 쌓이는 힘을 관리하는 것이 수율을 좌우합니다. 빌드업 방식(ABF와 구리 반복)은 기존 패키지 기판과 비슷하지만, 코어를 다루는 장비와 공정은 새로 갖춰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글래스 기판은 왜 필요한가요?
AI 칩과 HBM이 커지면서 패키지 기판도 커졌고, 커진 플라스틱 계열 기판은 열을 받으면 층마다 다르게 늘어나 휩니다. 유리는 열팽창 계수가 작고 단일 소재라 휨을 줄이는 데 유리합니다.
글래스 코어 기판과 글래스 인터포저는 다른 것인가요?
다릅니다. 글래스 코어 기판은 패키지 기판의 가운데 코어를 유리로 바꾼 것이고, 글래스 인터포저는 GPU와 HBM을 잇는 실리콘 인터포저를 유리로 바꾼 것입니다. 둘 다 패키지가 커지는 흐름에 대응하려는 기술입니다.
TGV 공정은 무엇인가요?
유리 원장에 구멍을 뚫고 구리로 채워 위아래를 전기로 잇는 공정입니다. 레이저로 유리 구조를 바꾼 뒤 식각액으로 구멍을 내고, 금속막을 입혀 구리를 도금한 다음 표면을 연마합니다.
유리 기판은 깨지지 않나요?
깨짐은 가장 큰 난제입니다. 특히 ABF를 여러 층 붙인 뒤 낱개로 자르는 싱귤레이션 단계에서 쌓인 응력 때문에 불량이 많이 납니다. 공정마다 유리에 가해지는 힘을 관리하는 기술이 수율을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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