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28자 구성, 세종 친제의 근거와 사라진 4글자
세종이 1443년에 만든 훈민정음은 자음 17자와 모음 11자, 모두 28자였습니다. 이 글은 훈민정음 28자가 어떤 원리로 짜였는지,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고 보는 기록상의 근거는 무엇인지, 지금은 쓰지 않는 4글자와 '한글'이라는 이름이 생긴 과정까지 차례로 설명합니다.

훈민정음 28자는 어떻게 짜였나
『세종실록』 1443년(세종 25년) 음력 12월 기사에는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글자의 원리와 쓰는 법을 풀어 쓴 책 『훈민정음』(해례본)은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완성됐습니다. 한글날 10월 9일은 이 날짜를 양력으로 바꾼 것입니다.
28이라는 숫자는 글자를 만든 방식에서 나옵니다. 자음(초성) 17자와 모음(중성) 11자를 더한 수입니다.
자음 17자: 발음 기관을 본뜨고 획을 더했다
자음은 소리를 낼 때 입안의 모양을 본떠 기본 글자 다섯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 ㄱ: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 ㄴ: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
- ㅁ: 입 모양
- ㅅ: 이 모양
- ㅇ: 목구멍 모양
여기에 소리가 세질수록 획을 하나씩 더했습니다. ㄱ에서 ㅋ, ㄴ에서 ㄷ과 ㅌ, ㅁ에서 ㅂ과 ㅍ, ㅅ에서 ㅈ과 ㅊ, ㅇ에서 ㆆ과 ㅎ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획을 더한 글자가 9자입니다. 모양을 조금 달리한 글자(이체자) ㆁ, ㄹ, ㅿ 3자를 더해 자음은 모두 17자가 됩니다.
이 설계 덕분에 소리 나는 자리가 같은 글자끼리 모양이 닮았습니다. 로마자와 비교하면 차이가 잘 보입니다. B와 P는 둘 다 입술에서 나는 소리이고, D와 T는 둘 다 혀끝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로마자는 이 공통점을 글자 모양에 담지 않았습니다. 한글은 ㅁ·ㅂ·ㅍ이 입술소리, ㄴ·ㄷ·ㅌ이 혀끝소리라는 것을 모양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모음 11자: 하늘·땅·사람
모음은 하늘을 본뜬 ㆍ(아래아), 평평한 땅을 본뜬 ㅡ, 서 있는 사람을 본뜬 ㅣ를 기본 글자로 삼았습니다. 이 셋을 한 번 합쳐 ㅗ·ㅏ·ㅜ·ㅓ 4자를, 두 번 합쳐 ㅛ·ㅑ·ㅠ·ㅕ 4자를 만들었습니다. 기본 3자에 8자를 더해 모음은 11자입니다.
받침(종성)은 글자를 따로 만들지 않고 자음 글자를 다시 쓰게 했습니다. 그래서 적은 글자 수로 우리말의 모든 음절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한글이 남다른 문자로 꼽히는 이유
만든 사람과 원리가 기록으로 남은 문자
라틴 알파벳 같은 대부분의 문자는 다른 문자를 빌려 고쳐 쓰며 오랜 시간 저절로 바뀌어 왔습니다. 그래서 글자 모양과 소리 사이에 일정한 규칙이 적습니다. 한글은 사람이 소리를 내는 방식을 연구해 일부러 설계한 문자이고, 누가 언제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가 책으로 남아 있습니다. 원리를 알게 된 언어학자들이 놀라는 이유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이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습니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 문해상을 만들어 세계의 문맹 퇴치에 애쓴 개인과 단체에 상을 줍니다. 상금은 대한민국 정부가 내지만, 유네스코가 세종의 이름을 단 상을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한글 창제의 뜻을 인정한 셈입니다.
한글은 중국 조선족 자치주에서도 쓰입니다. 이를 근거로 한글을 중국 소수민족의 문자처럼 소개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글은 15세기 조선에서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자판으로 치기 쉬운 문자
한자는 수만 자이고, 중국에서 자주 쓰는 상용자만 2,500자입니다. 일본은 가나 50음과 함께 상용한자 2,136자를 씁니다. 그래서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입력하려면 소리를 친 뒤 한자를 고르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한글은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거나 글자를 합쳐 다른 글자를 만듭니다. 적은 수의 키로 모든 글자를 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휴대전화의 천지인 자판은 모음 기본 글자 ㆍ, ㅡ, ㅣ 세 개만으로 모든 모음을 입력하게 만든 방식입니다.
세종은 왜 한글을 만들었나
세종이 직접 밝힌 이유는 『훈민정음』 첫머리의 서문에 있습니다. 우리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잘 통하지 않고, 그래서 글을 모르는 백성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편히 쓰게 하려 한다고 적었습니다.
결심한 계기를 구체적으로 적은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앞뒤 정황을 잇는 해석이 있습니다.
- 1428년 진주에서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 충격을 받은 세종은 충신·효자·열녀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삼강행실도』를 만들게 했고, 이 책은 1434년에 간행됐다.
- 그림책만으로는 글을 모르는 백성을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었다.
- 같은 시기 세종은 한자음을 연구하는 운학에 몰두했고, 이 연구가 사람의 말소리를 분석하는 데로 이어졌다.
실제로 한글을 만든 직후 세종은 『삼강행실』을 언문으로 번역해 퍼뜨리면 백성이 쉽게 깨우칠 것이라고 말한 기록이 있습니다. 1444년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 상소를 두고 오간 문답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창제 뒤에는 한자음을 우리식으로 정리한 『동국정운』도 펴냈습니다.
누가 만들었나, 친제설과 다른 설
한글을 누가 만들었는지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집현전 학사들이 만들었다는 설,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는 친제설, 세종과 학사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협찬설, 그리고 승려 신미가 만들었다는 설과 정의공주가 도왔다는 설까지 있습니다. 사실은 결국 당대 기록으로 따질 수밖에 없고, 국어학계에서는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는 친제설이 정설입니다.
근거 1: 실록과 해례본의 '친히 만들었다'
『세종실록』은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고 적었습니다. 해례본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도 "계해년(1443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처음 만드셨다"고 썼습니다. 신하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근거 2: 가장 먼저 반대한 곳이 집현전
한글이 나오자 가장 먼저 반대한 사람들은 집현전 학사들이었습니다. 1444년 음력 2월, 집현전의 실무 책임자인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7명이 한글 사용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집현전이 한글을 만든 주체였다면 그 핵심 인물들이 반대 상소를 올리기는 어렵습니다.
해례본을 쓴 사람은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8명입니다. 이들은 한글을 만든 뒤 그 원리를 풀이하고 보급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 가운데 신숙주는 1443년에 스물여섯 살 남짓이었습니다. 이렇게 젊은 학사들이 말소리 체계를 처음부터 설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근거 3: 말소리 구조를 가장 잘 안 사람
최만리와의 문답에서 세종은 "너희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되느냐"고 꾸짖었습니다. 자음이 입의 어느 자리(어금니·혀·입술·이·목구멍)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는지 아는 것이 바로 한글의 원리입니다.
한글은 사람 말소리의 구조를 깊이 아는 사람이 만들어야 했습니다. 당대 기록에서 그 지식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람이 세종입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고 볼 만한 당대 기록은 없고, 신미대사설 같은 주장은 후대 문중 기록이나 전승에 기대고 있습니다.
한글이 자리 잡기까지
세종은 한문을 없애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식 문자는 한문으로 두고, 한문으로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한글로 채우려 했습니다.
한글이 가장 절실했던 사람들은 한문 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여성들이었습니다. 왕실과 사대부 집안 여성들이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어린 왕을 대신해 정치를 맡은 대비가 한글로 명령을 내린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왕과 남성 사대부도 가족에게 한글 편지를 썼고, 조선 후기에는 『춘향전』 같은 한글 소설이 널리 읽혔습니다.
1894년 고종은 칙령 제1호(공문식)로 법률과 칙령을 국문을 바탕으로 쓰고, 한문 번역을 붙이거나 국한문을 섞어 쓰게 했습니다. 실제로는 그 뒤에도 한자로 쓴 공문서가 많았지만, 우리 글이 처음으로 나라의 공식 문자로 선포된 일이었습니다.
이웃 나라와 비교하면 그 의미가 더 잘 보입니다. 튀르키예는 1928년 아랍 문자를 버리고 로마자를 새 문자로 들여왔습니다. 문자를 바꾸면 온 국민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조선은 이미 400년 넘게 써 온 한글이 있었기에 고종이 국문을 쓰겠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 공식 문자를 바꿀 수 있었습니다.
사라진 4글자: ㆍ, ㅿ, ㆁ, ㆆ
훈민정음 28자 가운데 지금 쓰지 않는 글자는 4자입니다.
- ㆆ(여린히읗):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를 적던 글자로, 주로 한자음을 적는 데 쓰이다가 15세기 후반에 가장 먼저 사라졌습니다.
- ㆁ(옛이응): 받침의 'ng' 소리를 적던 글자입니다. 16세기 무렵 모양이 ㅇ과 하나로 합쳐졌지만, 소리는 '강아지'의 '강' 받침처럼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 ㅿ(반치음): 영어 z와 비슷한 소리를 적던 글자로, 16세기 무렵 소리가 사라지면서 글자도 쓰이지 않게 됐습니다.
- ㆍ(아래아): 소리는 16세기부터 둘째 음절에서, 18세기에는 첫째 음절에서도 사라졌습니다. 글자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공식적으로 빠졌고, 제주 방언에는 그 소리가 일부 남아 있습니다.
28자에 들어가지 않는 글자도 있었습니다. ㅂ 아래에 ㅇ을 이어 쓴 ㅸ(순경음 비읍)처럼, 입술소리 아래에 ㅇ을 붙여 입술을 가볍게 스치는 소리를 적었습니다. 이 방식을 살리면 지금도 B와 V, P와 F를 구분해 적을 수는 있습니다. 다만 우리말에는 그 소리 구분이 없어 맞춤법을 고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언제 생겼나
처음부터 '한글'이라고 부른 것은 아닙니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세종이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반대하던 학자들과 일반 사대부는 계속 '언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언문은 한문에 견주어 우리말을 적는 글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개화기에는 '국문'이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긴 뒤로는 나라의 글이라는 뜻의 국문을 쓰기 어려워졌고, 그 무렵 '한글'이라는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처음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1910년대 초 국어학자 주시경과 그 제자들이 쓰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한'은 크다, 하나, 우리 겨레(韓) 같은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니 한글이라는 이름은 100살 남짓이고, 훈민정음은 580년이 넘었습니다. 훈민정음은 28자, 지금 한글은 24자이니 둘을 다른 것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문자 체계의 이름이 바뀐 것이고, 그사이 글자 몇 개가 쓰이지 않게 된 것일 뿐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표현도 틀리지 않습니다.
지금 한글은 몇 자인가
현행 「한글 맞춤법」은 기본 자모를 24자(자음 14자, 모음 10자)로 정합니다. 여기에 ㄲ·ㄸ 같은 겹자음 5자와 ㅐ·ㅘ 같은 겹모음 11자를 더하면 자음 19자, 모음 21자, 모두 40자입니다. 처음 보는 외국인도 이 원리를 알면 40자 정도만 익혀 읽고 쓸 수 있어 빨리 깨칩니다.
한국어는 어디서 왔나
예전 교과서에는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지금 학계에서는 이 말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는지도 논란이 있고, 속하지 않는다면 어느 어족인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친척 언어가 확인되지 않은 고립어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세계의 언어 수는 무엇을 하나의 언어로 보고 무엇을 방언으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언어 목록을 정리하는 에스놀로그(Ethnologue) 집계로는 7천여 개입니다. 남북한 말은 하나의 언어이지만, 갈라진 지 80년이 넘으면서 사전과 맞춤법, 쓰는 낱말이 꽤 달라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훈민정음은 왜 28자인가요?
자음 17자와 모음 11자를 더한 수입니다. 자음은 발음 기관을 본뜬 기본 글자 5자에 획을 더한 9자와 모양을 달리한 3자를, 모음은 하늘·땅·사람을 본뜬 3자에 이를 합친 8자를 더해 만들었습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나요?
국어학계의 정설은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는 친제설입니다. 실록과 해례본 서문이 모두 임금이 친히 만들었다고 적었고, 집현전의 핵심 학자들은 오히려 반대 상소를 올렸습니다. 정인지, 신숙주 같은 학자들은 만든 뒤 해례본을 쓰고 보급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훈민정음에서 사라진 글자는 무엇인가요?
ㆍ(아래아), ㅿ(반치음), ㆁ(옛이응), ㆆ(여린히읗) 4자입니다. ㆁ의 소리는 지금 받침 ㅇ으로 남아 있고, 아래아는 1933년 맞춤법 통일안에서 공식적으로 빠졌습니다.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인가요?
『훈민정음』 해례본에 적힌 완성 날짜, 1446년 음력 9월 상순을 양력으로 바꾼 날이 10월 9일이기 때문입니다. 한글을 처음 만든 것은 1443년 음력 12월이지만, 한글날은 원리를 풀어 쓴 책이 완성된 날을 기준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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